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제국 육군 (문단 편집) === 특별조종견습사관 === 태평양전쟁으로 조종사가 크게 부족하자 일제는 1943년 [[7월 3일]] '육군항공관계예비역장교보충복역임시특례'를 공포하여 에 [[구제대학|대학]] 또는 [[구제전문학교|전문학교]] 출신들에게 1년 반 정도 조종 기술을 가르쳐 전선으로 내보내기로 하였다. 이들이 바로 특별조종견습사관(特別操縦見習士官, 이하 '특조')인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입대와 동시에 조장([[상사]]) 계급장을 달고 곧바로 장교에 준하는 예비사관 대우를 받는 것이다. 이는 대단한 특권으로 갑종간부후보생은 [[이등병]]부터, 소년비행병은 [[기초군사훈련]] 후 [[상등병]]부터, 심지어 육사 예과 졸업후 대부교육 당시 상등병부터 근무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특조는 소년비행병과 달리 [[기초군사훈련]]을 받지 않고 바로 비행훈련을 받았다. [[계급장]]은 조장을 달고 훈련받았는데, 오장 또는 군조인 [[조교]]들 보다 계급이 높았다. 그러나 어느 군대나 그렇듯 실제 교육 과정에서는 계급과 상관없이 조교들이 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희전문 출신 김상필의 경우 조선인이다보니 일본어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를 자주 저질렀고 조교들이 크게 질책할때 마다 속으로 삭이는것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일본인 동기들의 증언도 있다. 1기 1943년 [[10월]] 2,500명(조선인 7명) 2기 1944년 [[2월]] 1,200명 3기 1944년 [[6월]] 2,650명 4기 1944년 [[8월]] 1,125명 총합 7,475명 교육은 1년 과정이었지만 전황 악화로 1기생은 반년 후인 1944년 [[3월]]에 졸업했다. 조선인으로는 [[와세다대학]] 출신의 [[장성환]] 중위와 다른 대학을 나온 신유협 중위가 있다. 그리고 특조출신으로 가미카제로 오키나와에서 전사한 호타루의 주인공 [[탁경현]] 소위, 연희전문 학생회장출신의 김상필 소위 그리고 Ki-45로 육탄공격으로 B-29를 격추하고 전사한 보성전문출신의 노용우 소위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